마음의 바다 위에 떠있는 섬들

                                          박영택/미술평론가, 경기대교수


장현재의 그림 안에는 물과 섬/산 만이 호젓하게 들어 있다. 그 모습은 세계의 풍경이지만 동시에 ‘반-풍경’이기도 하다.  기존의 익숙한 풍경의 체계와 얼개를 은연중 지우고 슬쩍 벗어나 있기에 그렇다.  사실 그림 앞에서 우리가 그것을 풍경으로 읽을만한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정보들은 부재하다.  그저 흐릿한 황토, 금빛으로 물든 배경에 먹이 입혀진 길죽하고 위로 부풀어오른 형태만이 몇 개씩 짝을 지어 늘어서 있을 뿐이다.  물론 그 모습은 남해의 다도해 풍경 같기도 하고 우리네 산천에서 흔히 보는 물가 풍경이나 겹겹이 연결 되어있는 산맥의 장엄한 모습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그렇지만 그것은 보는 이의 드라마나 상상이 개입되었을 때만 가능한 ‘장면’이다.  그런 드라마를 지운다면 그의 그림/일종의 풍경화는 기존 규범이나 관습에 얽힌 풍경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이야기가 배제되어 있고 자연에 대한 선입견과 이데올로기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 있다.  그렇지만 그의 그림은 여전히 ‘풍경-산수’란 카테고리에 묶여있다.  그리고 작가에게 있어 그 풍경, 산수는 단순히 장르의 선택과 그림의 소재만이 아니라 자기 그림의 정체성, 동양화의 실체 성을 담보해주는, 거의 유일한 표식으로서 기능 한다.


장현재의 그림은 자기 앞에 존재하는 세계를 마주하고 이를 재현한다기보다는 대상을 지우고 오로지 자신의 심상에 의존해 그려낸 근원적인 풍경, 하나의 원 풍경 같다.  동시에 그 그림들은 산수화의 경험적인 표지들을 최소한으로 갖고 있다.  그것은 관념화된 풍경이자 형이상학으로서의 풍경 같다.  그래서 실재하는 섬이나 산이 아니라 환상의 섬이고 자연이다. 그럼에도 그 섬, 산은 이 작가에게는 더욱 현실적인 풍경에 다름 아닌 것 같다.


풍경이란 인간을 둘러싼 모든 환경을 아우르는 말이다.  그것은 공간에 관한 이식과 결부된다.  동시에 장소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공간이란 결국 인간 삶과 결부된 시간적 생성, 소멸의 순환과 변화를 보여주는 실체이다. 장현재는 본질로 환원된 형태를 반복해서 겹쳐내면서 자신의 삶 속에서 체험한 그 공간을 구성해 보여준다.  나로서는 그의 그림에서 그렇게 마음의 조각들로 나앉은 ‘공간-세계-삶’을 들여다본다.  따라서 지금의 그림은 풍경의 기호를 빌어 그만의 공간, 삶에 대한 단상, 상념들을 그려 보이고 있다는 생각이다.  자신의 심리와 정서가 ‘풍경-기호’를 빌어 출몰하는 그림이란 결국 일종의 자화상으로서의 풍경인 셈이다.


먹과 얇게 종이의 피부를 덮어나간 혼합재료들은 수묵의 맛과 균질한 질감을 동시에 절충시킨다.  단색조의 기조가 유지되면서 아울러 색/물질이 공존하는 이 같은 형식적, 방법적 측면에서 본다면 장현재의 그림은 동양화의 전통적 코드에 상당히 충실하면서 동시에 약간의 변화를 동반해 살을 채워나가는 편이다.  그로 인해 표면은 다양한 감정의 층위들이 흐르고 얹혀지면서 심리적인 정서와 표현의지를 부각시키고 있다. 그러나 지금의 이런 방법들이 그만큼 효과적인지는 다소 의문이다.  재료에 대한 협애한 체험, 풍경-산수에 대한 다소 완고한 미적 관념이 그림의 폭을 제한시키는 것은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든다.


그의 그림은 다도해의 풍경, 포개지면서 아슴프레 하니 저 멀리로 사라지는 섬들의 아련한 모습들을 연상시킨다.  그 섬들은 우리의 산을 닮아 부드럽고 유연하고 포근하다.  볼록한 그 삼각형의 형태들이 텅 빈 적막한 공허 속에  불쑥 머리를 들이밀고 솟아오르는 형국이다.  그것은 흡사 바위/돌멩이나 무덤 같기도 하다.  그 형태들의 유사성은 우리네 풍경, 동양의 자연, 자연관을 압축해서 환원시킨 일종의 도상이다.  하늘을 향해 수직으로 오르는 기운과 생명의 상징들이 바로 산/섬의 형상이다.  우리네 선조 들이 산을 숭배와 신앙, 경외의 대상으로 삼은 것도 바로 그러한 연유에서이다.  그렇다면 장현재의 그림에 등장하는 이 형상/형태는 동양적 자연관의 한 압축이고 원형인 편이다.


아울러 그 형태들은 경계에서 떨리며 고정되지 않고 안착되지 않는다.  그것들끼리의 윤곽선은 단호하게 닫혀지지 않고 서로 열려있고 겹쳐있으며 스며들어 있다.  섬 안에 섬이 있고 섬 옆에 섬이 새롭게 떠 탄생한다. 그 섬들은 어떤 미지, 유토피아, 근원의 갈망으로 보채는 듯도 한다. 그는 화면을 바다, 내면의 바다로 삼아 그 안에 이렇게 저렇게 섬, 현실인 공간들을 배치한다.  마치 수석 취미를 보여주듯 돌멩이를 이리 저리 놓아보는 체험과도 유사하다.  그것은 일종의 조경이다.  동양의 산수화란 것이 기실 그런 그림이었다.  나로서는 동양의 산수화를 보면서 그림 그린이의 내면에서 디스플레이한 조경/압축된 자연/그만의 신앙적 자연의 모습과 질서를 본다.  바로 그 모습들을 새삼 장현재의 그림에서 이렇게 접하고 있다.